[오늘의 빛: 오늘의 색] 먼 산의 어스름한 청색, 취람색

2019. 9. 5. 10:17오늘의빛/오늘의색


Color of today:

취람색

디자인빛의 작은 프로젝트 오늘의색
하루에 한 빛깔,
아름다운 색과 재미있는 색이름을 소개합니다.


디자인빛이 소개해 드릴 오늘의색은 '취람색翠嵐色'입니다.
취람색은 '먼산에 끼어 푸르스름하게 보이는 흐릿한 색(색채용어사전, 박연선, 국립국어원, 2007., 도서출판 예림)'이라고 해요.
색채용어사전에 따르면 취람색은 쓰는 한자에 따라서 '멀리 보이는 저녁 무렵 하늘의 기운을 띈 색'이 되기도 하고 '여성스러운 남색'이 되기도 한다고 합니다. 옛날에는 여성의 색과 남성의 색을 구분해서 썼었는데 그게 반영된 것으로 보여요. 참고로 '취'는 암컷 물총새를 뜻한다고 하네요!

취람색은 이런 색?! 한국은 산이 많아 이런 어스름한 색을 (미세먼지만 없다면) 흔하게 볼 수 있죠!

 

그런데 취람색이라는 명칭을 쓸 때는 파란 기운의 색에 쓸 때도 있고, 초록색에 쓸 때도 있고, 청록색에 쓸 때도 있어요. 대체 취람색은 어떤 색일까요?!
오늘의 색 이미지에 사용한 취람색은 한국 전통색 표준 색상표에 나온 RGB 값을 따른 것이랍니다.
이 색상표는 총 90개의 전통색을 정리한 목록인데요, 1992년 국립현대미술관이 발간한 '한국전통표준색명 및 색상 2차 시안'에 수록되었던 먼셀 수치를 중앙대학교와 문은배 색채디자인연구소가 개발한 디지털 색채 팔레트를 이용해 RGB 및 CMYK 값으로 변환한 것이에요. 아사아케에서 소개해드렸던 DIC 일본 전통색 가이드와 같은 활동이라고 볼 수 있지요.

다만 전통색을 연구하시는 분들이 한결같이 토로하시는 것은, 우리나라에는 색상에 대한 기록이 매우 적다는 거에요. 그래서 기록에 있는 색이름이 실제로 어떤 색인지 알아내는 것도 힘들었으리라 짐작해 봅니다.

그럼 현대에 취람색으로 불리는 색을 보실까요?

현재 판매중인 '취람색' 치마. 출처:daonemall

아무래도 취람색이라는 이름이 많이 사용된 곳은 염색된 천의 색상이었을 듯 해요. 취람색은 쪽 염색으로 얻을 수 있는 색이에요. 규합총서에 따르면 옥색이나 취람색은 가공하지 않은 쪽의 생잎으로 연하게 염색했을 때 얻을 수 있다고 합니다! 문헌 기록으로는 6, 7월경에 도톰한 쪽잎을 따서 바로 주물러 물을 들이면 된다고 해요. 그런데 날이 따뜻하거나 온도가 높아지면 쪽잎이 발효되어서 진한 파랑(흔히 쪽빛이라고 하지요!)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말복에는 잎빛이 변하므로 얼음 옆에 두어라' 또는 '시원한 아침에 쪽을 거둬서 얼음을 넣고 돌로 간뒤 곧바로 염색해라'는 방법도 기록되어 있다고 하네요! 취람색 자체도 청량한 느낌인데 이 색을 만드는 과정도 차가움이 중요했다니 신기하지요.

디자인빛에서는 한국 전통색 표준 색상표의 CMYK 값을 따라 전통색들을 인쇄해 본 적이 있는데, 생각보다 예쁘게 나오지 않아서ㅠㅠ 한국적 컨셉의 작업을 할 때는 한국 전통색 표준 색상표에서 색을 고르되 조금씩 수치를 조정하며 사용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취람색은 표준 색상표에서 C62, Y51이라는 잉크값을 가지고 있는데요, 이것보다는 잉크를 조금 덜 써야 제가 갖고 있는 밝고 맑은 취람색의 이미지를 구현할 수 있더라구요. 물론 비슷한 색을 찾아 팬톤 별색을 사용할 수도 있지만, 전통색도 전용 잉크가 개발되었으면 하는건 제 욕심일까요?
또, 취람색은 사람마다 말하는 색이 다르니 좀더 이 색이 많이 사용되어서 우리에게 공통된 취람색 이미지가 생기면 좋겠습니다. 제 생각에는 아까 올려드린 치마의 색상으로 거의 인식이 통일된 것 같기는 하지만요. 때로 저 톤을 비취색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저는 취람색이라는 이름이 더 낭만적이라서 좋네요! '멀리 보이는 저녁 무렵 하늘의 기운을 띈 색'은 색상뿐만 아니라 그 아련한 느낌까지 색에 부여하는 것 같아서 좋거든요.

그럼 오늘의빛은 또 재미있는 색 이야기를 가지고 돌아오겠습니다!

 

디자인빛의 작은 프로젝트
오늘의빛은 매일매일 찾아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