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빛: 오늘의 색] 진초록 아니죠, 포근한 사려니 숲길

2019. 9. 9. 10:25오늘의빛/오늘의색

Color of today:

포근한 사려니 숲길

디자인빛의 작은 프로젝트 오늘의색
하루에 한 빛깔,
아름다운 색과 재미있는 색이름을 소개합니다.


안녕하세요, 오늘 디자인빛이 소개해드릴 색은 '포근한 사려니 숲길이니스프리 리얼컬러 네일 47호'입니다.
이 색이름을 통해 한국에 정착한 '창의력 대장 색 이름 짓기'를 소개해드릴까 해요.

'포근한 사려니 숲길'처럼, 코스메틱 업계가 제품 색상을 특이하게 짓는 건 이제 많이 익숙해진 현상입니다. 이런 마케팅 전략을 일시적인 유행으로 보는 시각도 있었지만, 색은 이름에 따라 선호도가 달라지기 때문에 이제는 오히려 예전으로 돌아가기 힘들어진 것 같아요^^;
그럼 코스메틱 업계는 왜 색이름을 이런 방식으로 붙이기 시작한 것일까요? 그 이유는 2002년에 발표되었다는 심리학회 논문에서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미국 버지니아 대학의 제니 스코린코 박사팀은 235명의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색상을 보여준 뒤에, 그 명칭에 대한 인식도를 측정하는 시험을 진행했다고 해요. 스코린코 박사는 연구 동기로 "많은 화장품회사들이 립스틱이나 블러시 등 그들이 발매하는 제품들의 색상에 흔히 불리워지는 명칭generic name을 놔둔 채 굳이 공들여 독특한 이름elaborate names을 짓는 경향이 있다는 현실에 주목했다"고 밝혔습니다.ㅋㅋㅋ

이름으로 승부하는(...) '네이밍 마케팅'은 이제 시작입니다..!

 

 

실험 방식은 다음과 같았어요. 갈색을 보여주면서, 하나에만 '갈색'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나머지 세가지 색상에는 명도, 질감에 따라 사막모래색, 초콜렛색, 짙은 커피색 등의 이름을 붙여 참여자들에게 보여준 뒤 색상별 선호도를 조사했습니다. 실험 결과 흔히 사용되는 색이름은 멋진 이름에 비해 선호도가 크게 뒤쳐졌다고 해요. 밤색보다는 초콜렛색, 초록색보다는 아보카도색이 더 선택받을 확률이 높았다는 것이죠.

이 연구 결과에 대해 스코린코 박사는 "중요한 것은 색상 자체가 아니라 얼마나 멋진 이름이 붙여졌는가의 여부였다", "일부 소비자들의 경우 이름이 지닌 매력에 이끌려 정작 자신이 정말로 원하지도 않았던 제품을 구입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라고도 말했습니다. 헉...이게 사실일까요. 우린 정말 이름만 보고 살 생각도 없던 색들을 쓰고 있는 것일까요?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리다고 하겠습니다.
왜냐면 코스메틱 제품은 이미 수집품으로서의 기능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거기다 기능성 제품들도 이제 성분을 강조할 때 그 성분의 원재료의 감성적인 이미지를 마케팅에 사용하고 있어요. 소비자들은 자신의 심금을 가장 울리는 제품을 사면 되는 것이죠.

니가 뭘 좋아할지 몰라서 색을 80개 준비해봤다 느낌의 이니스프리 리얼컬러네일

 

 

사실 스코린코 박사의 이 실험의 원본 텍스트를 찾지는 못했어요. 이 연구가 소개된것도 뷰티누리라는 곳의 기사 하나뿐이라 신빙성이 큰 자료는 아니지만, 색채 전문가 사이에서도 색 이름이 선호도에 영향을 미친다는 견해가 지배적입니다:)

이 네일컬러의 이름이 진녹색인 것과 포근한 사려니 숲길인 것에는 큰 차이가 있는 거죠.
이니스프리는 처음에 '자연주의 브랜드'를 표방하며 깨끗한 자연을 간직하고 있는 '이니스프리섬'을
브랜드 이미지로 내세웠습니다. 하지만 곧 제주도의 이미지를 가져옴으로서 막연할 수도 있는 '깨끗한 자연'의 이미지를, 우리가 쉽게 떠올릴 수 있고 또 맘만 먹으면 체험하러 갈 수 있는 현실적인 이미지로 만들어내는데 성공했습니다. 포근한 사려니 숲길은 네일컬러로서는 선호되는 색상이 아닐지 몰라도
이름 덕분에 비에 조금 젖고 이끼가 가득 핀 사려니 숲의
따뜻한 이미지를 제품에 불러오는데 성공했습니다.

사실 '특이한 이름 짓기' 열풍은 서구에서 먼저 시작되어 국내에서도 'ㅇㅇ버건디' 'ㅇㅇ코랄'등 영어로
된 이름이 지배적이었는데요. 이니스프리를 비롯한 국내 코스메틱 브랜드들은 한국어로 된 색이름을 개발했다는 점에서 또 의미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영어로 이름을 지으면 소비자들을 고려해 단편적인 단어만 사용해야 하지만, 한글은 형용사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어서 훨씬 시적이고 감성적인 느낌을 살릴 수 있죠. 영어로 똑같이 설명적인 이름을 짓는다고 상상해보면 지금같은 귀여운 느낌은 나지 않을 것 같아요.

색 이름을 상세하게 지으면 지을수록 얻을 수 있는 효과가 또 하나 있습니다. 의도한 색의 이미지를 정확히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인데요. 색에는 너무나 많은 의미가 있어서 노랑은 활기! 이런 식으로 단정할 수 없답니다ㅠㅠ 노랑은 활기를 상징하면서도 질병이나 주의를 상징하기도 하거든요. 어떤 색에건 부정적인 이미지와 긍정적인 이미지가 공존하고, 우리는 그 색이 쓰인 맥락에 따라 색의 이미지를 파악할 수밖에 없습니다.
진녹색 같은 색은 자칫 잘못하면 부정적인 이미지를 줄 수도 있는 색이지요. 구체적인 색 이름을 지음으로서 그런 위험성을 제거하고 긍정적인 이미지를 확실하게 부여할 수 있습니다. 이니스프리 네일컬러 이름을 보다보면, 네일컬러로서 선호되지 않는 색이더라도 이름 때문에 매력이 살아나는 색들이 여럿 있어요!

디자인빛은 오늘의 색 연재를 준비하면서 코스메틱 쪽의 좋은 색이름들을 많이 찾아두었답니다...앞으로도 종종 소개해드리려고 해요! 앞으로는 색이름들이 제품에 부여하고자 했던 이미지를 중심으로 소개해드릴게요.

그럼 앞으로도 기대해 주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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